호주에 온 지 20년이 됐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한국 냄새가 나는 꿈을 꿉니다.
명절이 되면 가슴 한편이 이상하게 무겁습니다.
“이제 다 적응했는데 왜 아직도 이러지?”
하고 생각하신 적 있으신가요?


이 글에서 다루는 내용

  • 1996년 한 어머니의 스케치 이야기
  • 슬픔이 작아지지 않아도 괜찮은 이유
  • 이민자의 그리움을 슬픔으로 새롭게 보기
  • 슬픔 주위로 자라난 것들
  • 극복이 아닌 동행

한 어머니의 스케치

1996년, 한 심리학자가 워크숍에서 만난 어머니의 이야기입니다.

아이를 잃은 어머니였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슬픔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그림으로 표현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처음에 그분은 이렇게 예상했습니다.

처음에는 슬픔이 삶 전체를 가득 채웁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슬픔이 조금씩 작아집니다.
원 안에서 슬픔이 쪼그라들고,
빈 공간이 생깁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달랐습니다.

슬픔의 크기는 그대로였습니다.
처음 그 슬픔, 그 무게 그대로.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대신 원 자체가 커졌습니다.

삶이 슬픔 주위로 자라났습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일을 하고,
새로운 하루를 살아가면서
삶이 조금씩 넓어졌습니다.

슬픔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삶이 커지면서
슬픔 바깥에서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왜 위로가 됩니까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는 말은
슬픔이 작아질 거라는 기대를 심어줍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도 슬픔이 줄어들지 않으면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고 느끼게 됩니다.

“아직도 이러면 안 되는데.”
“이제 털고 일어나야 하는데.”

하지만 슬픔은 원래 작아지지 않습니다.

삶이 커지는 것입니다.

그 차이가 전부입니다.
슬픔이 그대로여도 괜찮습니다.
삶이 자라고 있다면 충분합니다.


이민자의 그리움 — 이것도 슬픔입니다

시드니에서 오래 사신 분들에게는
독특한 슬픔이 있습니다.

장례식도 없고, 위로받을 자리도 없는 슬픔입니다.

고국을 떠난 슬픔
한국의 골목, 냄새, 소리, 사람들.
처음엔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불쑥 찾아옵니다.

부모님을 멀리서 보내드린 슬픔
임종을 곁에서 지키지 못한 것.
장례식에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한 것.
그 마음이 몇 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젊은 날의 꿈과 이별한 슬픔
이민을 결정하면서 포기한 것들.
다르게 살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

이 모든 것들이 슬픔입니다.

그리고 이 슬픔들도
작아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삶이 그 주위로 자라고 있다면 충분합니다.


슬픔 주위로 자라난 것들

슬픔이 그대로인데 삶이 커진다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요.

슬픔이 뿌리가 됩니다

아이를 잃은 부모가
다른 사람의 슬픔을 더 깊이 이해합니다.

고국을 떠나온 경험이
낯선 땅에서 힘들어하는 누군가를 알아보게 합니다.

큰 슬픔을 경험한 사람은
더 단단해집니다.
더 깊어집니다.
더 많이 공감할 수 있게 됩니다.

슬픔이 뿌리가 되어
그 위에 삶이 자라납니다.

슬픔이 연결이 됩니다

같은 슬픔을 나눈 사람과의 관계는
특별합니다.

고인을 함께 기억하는 가족.
같은 시대를 살아온 이웃.
비슷한 이민의 경험을 가진 분들.

슬픔이 사람을 연결합니다.

슬픔이 감사가 됩니다

잃어버린 것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소중한 것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슬픔이 깊을수록
사랑이 깊었다는 증거입니다.


극복이 아닌 동행

우리는 슬픔을 “극복"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극복하지 못하면 약한 사람이라고.
아직 제대로 털고 일어나지 못한 것이라고.

하지만 슬픔은 극복의 대상이 아닐 수 있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슬픔을 없애려 하지 않아도 됩니다.
슬픔 주위로 삶을 키워가면 됩니다.

새로운 곳을 가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하루를 살아가면서.

그 슬픔은 여전히 거기 있습니다.
하지만 삶도 거기 있습니다.
그리고 삶은 계속 자랍니다.


모든 것을 바로 아실 필요는 없습니다

오늘 이 글을 읽으신 것으로 충분합니다.

슬픔이 작아지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삶이 조금씩 자라고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천천히 가셔도 됩니다.


오늘 해볼 수 있는 한 가지

잠깐 생각해보세요.

슬픔 주위로 자라난 것이 있습니까?

새로 사귄 친구, 새로 시작한 일,
새롭게 알게 된 자신의 강함.

그것들이 슬픔 주위로 자란 삶입니다.


웰다잉 이야기 시리즈를 마치며

6편에 걸쳐 함께 걸어왔습니다.

죽음을 외면하지 않는 것,
살아있는 이별을 슬픔으로 인정하는 것,
죽음과 관계를 맺는 것,
침묵을 깨는 것,
슬픔에 순서가 없다는 것,
그리고 슬픔 주위로 삶이 자란다는 것.

이 이야기들이 작은 위로가 되셨으면 합니다.

웰다잉은 죽음을 잘 준비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을 더 충만하게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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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내용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합니다.
개인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전문적인 슬픔 지원이 필요하시면 관련 기관이나 상담 전문가에게 문의하시는 것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