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얘기 하지 마. 재수없어.”
죽음 이야기가 나오면
한국 어른들은 대부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교회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죽음은 두렵고 나쁜 것,
하나님을 믿으면 죽음도 이겨낼 수 있다,
빨리 이 주제를 벗어나자.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죽음을 이렇게 두려워하고 피하는 것이
정말 신앙의 표현인 것일까요?
이 글에서 다루는 내용
- 왜 우리는 죽음을 이토록 두려워하게 됐는가
- 하나님은 삶과 죽음을 어떻게 보시는가
- 죽음을 적대시하는 것이 오히려 신앙의 문제일 수 있다는 관점
- 종교와 무관하게 — 죽음을 다시 보는 시각
- 죽음이 달리 보이면 오늘이 달라진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 죽음이 두렵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죽음 앞에서 공포를 느끼는 것은
인간으로서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문제는 그 공포가 너무 커지면
죽음을 아예 생각하지 않으려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야기도 하지 않고, 준비도 하지 않고,
그저 피하고 싶어집니다.
20세기 심리학자 어니스트 베커는
인간 문명 전체가 사실은
“죽음을 부정하는 프로젝트"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쌓는 업적, 자녀, 유산 —
모두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라는 것입니다.
종교 공동체도 예외가 아닙니다.
죽음을 극도로 적대시하는 것이
신앙의 표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죽음에 대한 불안의 다른 형태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죽음을 어떻게 보실까요
성경에서 죽음은 분명히 죄의 결과로 나옵니다.
“죄의 삯은 사망”(로마서 6:23)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성경은 이런 말도 합니다.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빌립보서 1:21)
사도 바울은 삶도 유익하고,
죽음도 유익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 안에서는 삶과 죽음 모두가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20세기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은
더 과감하게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을 때,
하나님 자신이 죽음을 경험하셨다고.
그렇다면 하나님은 죽음의 바깥에 계신 분이 아니라
죽음 안으로 직접 들어오신 분입니다.
죽음이 하나님께 낯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죽음도 품으셨습니다.
죽음을 적대시하는 것이 문제일 수 있는 이유
신앙 공동체 안에서 죽음을 극도로 두려워하고 피하는 데는
역설이 있습니다.
부활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
죽음 앞에서 공포에 떠는 것은
그 고백이 아직 마음 깊이 들어오지 않은 것일 수 있습니다.
신학자 폴 틸리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죽음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것은
“존재 자체이신 하나님"을 완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실존적 불안의 표현이라고.
영국의 신학자 N.T. 라이트는
현대 기독교가 죽음과 부활에 대해
성경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이해해왔다고 비판합니다.
죽음을 무조건 나쁜 것으로만 보는 것은
사실 기독교가 아니라 그리스 철학의 영향이라는 것입니다.
종교와 무관하게 —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것
여기까지 읽으시면서
“나는 교회를 다니지 않는데"라고 생각하신 분도 계실 겁니다.
괜찮습니다. 이 질문은 사실 종교를 넘어섭니다.
한국의 전통에서도 죽음을 적대시하지 않았습니다.
제사를 지내며 고인과 계속 관계를 맺고,
임종을 가족이 함께 지켰으며,
죽음을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로 받아들였습니다.
현대 사회가 죽음을 병원과 장례식장 안에 가두고
눈앞에서 사라지게 만든 것은
오히려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
죽음을 나쁜 것으로만 보는 것,
그것이 우리의 전통도 아니고
신앙의 본질도 아닐 수 있습니다.
죽음이 달리 보이면 오늘이 달라집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
죽음을 원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죽음을 직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죽음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죽음을 미리 생각해둘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을 때
오히려 오늘 하루가 더 소중해집니다.
미루던 전화를 합니다.
하고 싶었던 말을 합니다.
화해하고 싶었던 사람을 만납니다.
죽음을 직면하는 것이
더 잘 사는 방법입니다.
이것이 웰다잉의 출발점입니다.
모든 것을 바로 결론 내리실 필요는 없습니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오랫동안 품어오신 것들이 있을 겁니다.
오늘 이 글이 그 생각을 조금
흔들어드렸다면 충분합니다.
천천히 생각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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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특정 종교의 교리를 전파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죽음을 다시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소개하는 교육적 목적으로 작성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