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계신 어머니가 요즘 전화를 잘 안 받으십니다.

치매가 오신 건지, 그냥 피곤하신 건지.
멀리서 지켜보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자신이
너무 무력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이런 감정, 어디에 털어놓으셨나요?


이 글에서 다루는 내용

  • 살아있는 사람을 잃는 슬픔이란 무엇인가
  • 이민자가 겪는 특별한 이별의 형태들
  • 이 슬픔이 왜 더 외로운가
  • 슬픔을 다루는 세 가지 이야기
  • 오늘 할 수 있는 한 가지

죽지 않았는데 이미 잃은 것들

장례식이 있는 슬픔은 그나마 이름이 있습니다.
위로받을 자리가 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슬픔에는 이름이 없습니다.

점점 기억을 잃어가는 부모님을 바라보는 슬픔.
자녀가 한국어를 잊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슬픔.
오래 연락이 끊긴 형제자매를 그리워하는 슬픔.
고국을 떠난 후 한 번도 돌아가지 못한 슬픔.

이것들은 장례식도 없고, 위로받을 자리도 없습니다.
그래서 더 조용하고, 더 오래 남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살아있는 이별의 슬픔’ 이라고 부릅니다.
죽음이 아닌 상실이지만, 슬픔의 무게는 다르지 않습니다.


이민자가 겪는 이별의 형태들

시드니에서 오래 사신 분들은 잘 아십니다.

고국을 떠난 날의 슬픔
짐을 꾸리고 공항에 서던 날.
돌아볼수록 멀어지던 가족의 얼굴.
그 슬픔을 “더 좋은 삶을 위해서"라는 말로 덮어두었습니다.

명절을 혼자 보내는 슬픔
설날 아침, 추석 저녁.
한국이었다면 온 가족이 모였을 시간에
시드니의 조용한 집에서 혼자 차례를 지냅니다.

부모님이 늙어가는 것을 멀리서 보는 슬픔
사진 속 부모님은 점점 작아지십니다.
마지막을 곁에서 지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가끔 밤에 찾아옵니다.

자녀와 멀어지는 슬픔
호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자녀는
어느 날부터 한국어로 대화하기 어려워집니다.
같은 집에 살아도 가끔 낯설게 느껴집니다.

이 모두가 슬픔입니다.
죽음이 없어도, 이미 잃은 것들이 있습니다.


이 슬픔이 왜 더 힘든가

죽음으로 인한 슬픔에는 사회적 허락이 있습니다.
“많이 힘드시죠"라는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쉬어도 괜찮다는 분위기가 생깁니다.

하지만 살아있는 이별의 슬픔은 다릅니다.

“그래도 살아 계시잖아요.”
“이민 올 때 각오했던 거 아니었어요?”
“자녀가 호주 사람 다 됐으면 잘된 거지요.”

이런 말들이 슬픔을 없애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슬픔을 느끼는 자신을 이상하게 여기게 만듭니다.

슬픔을 느끼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사랑했기 때문에 그리운 것입니다.


슬픔에 대해 웰다잉이 가르쳐 준 것

죽음을 솔직하게 바라보는 연습을 하다 보면
슬픔을 다루는 방식도 달라집니다.

첫째, 슬픔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한국 문화는 강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특히 가장, 맏이, 어른은 더 그렇습니다.
그런데 슬픔을 참는 것은 치유가 아닙니다.
눈물은 약함이 아닙니다.
사랑의 다른 이름입니다.

둘째, 슬픔은 순서대로 오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직후에는 아무 감정이 없다가,
몇 달 후 마트에서 어머니가 좋아하던 된장을 보고
무너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이 정상입니다.
슬픔에는 정해진 달력이 없습니다.
“이제 괜찮아야 할 텐데"라고 스스로를 다그치지 않아도 됩니다.

셋째, 남은 시간을 낭비하지 마세요.

멀어진 가족에게 연락을 미루고 있다면,
오늘이 그날일 수 있습니다.

죽음을 똑바로 바라볼 때
오히려 지금 살아있는 시간이 더 소중해집니다.
“그때 한 번 더 전화할 걸” 하는 후회보다
오늘 전화 한 통이 낫습니다.


모든 것을 바로 정리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래된 슬픔은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민의 무게, 가족과의 거리, 고국에 대한 그리움은
인생의 일부가 되어 함께 삽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슬픔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소중한 것들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천천히, 자신의 속도로 가셔도 됩니다.


오늘 할 수 있는 한 가지

오래 연락하지 못한 분이 계신가요?
한국에 계신 부모님, 형제자매, 오랜 친구.

오늘 문자 한 통만 보내보세요.
“잘 지내?” 한 마디면 충분합니다.

완벽한 말을 찾지 않아도 됩니다.
연락 자체가 전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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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내용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합니다.
개인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전문적인 슬픔 지원이 필요하시면 관련 기관이나 상담 전문가에게 문의하시는 것이 좋습니다.